지난해 개기월식은 여러 사람들을 신경 써야 해서 온전히 즐기지 못했다.
올해 개기월식은 천왕성과 함께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는 소식에
아무 일정도 잡지 않고 온전히 즐기기로 한다.
일찌감치 회사엔 반차를 알리고 3일 전 현장 답사를 하니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전 과정을 볼 수 있겠다.
적도의를 2개 가동할까 하다가 다음날 일정도 있고 하니
지난 ISS 태양면 통과 관측할 때처럼 쌍포를 운영하기로 마음먹는다.
캐논 6D에 24mm 화각이면 월식 전 과정을 담을 수 있겠단 생각에 삼각대도 하나 추가하기로 하고.
드디어 이벤트 당일.
지평선 부근에 미세먼지가 많아 월출을 볼 수 없을 것 같다.
천천히 설치하다 보니 드러나는 보름달.
삼각대 위에 있는 6D부터 일을 시키고
가볍지만 듬직한 RST-135에 EDT 115를 설치하고, Fra400을 옆에 얹으려는데 EAF가 걸려 난감하다.
고민할 겨를도 없이 경통 밴드를 풀어 Fra400을 뒤집으니 해결이 되어 두 망원경 시야를 일치시킨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설치하니 이제 시작인가 보다. 보름달 한쪽이 어스름하다.
바라보고 있는 하늘은 비행기가 지나가는 길,
보름 즈음엔 지나가는 비행기 중 1개는 달을 스쳐 지나간다.
기회는 단 1번이다.
대개 기다리며 준비해야 하는데 딴청을 피웠는지
비행기가 달 바로 앞에 있는 걸 발견하고 버튼을 눌렀으나
비행기 머리가 지나간 후, 만감이 교차한다.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보다가도 카메라 LCD창을 보며 달 위치를 조정해주고,
더 자세히 보고 싶어 Fra400에 끼운 접안렌즈를 본다.
몸은 분주하지만 마음은 이벤트를 온전히 즐길 수 있어 뿌듯하다.
달이 지구 그림자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
접안렌즈를 빼고 그 자리에 178mc를 연결하고 노트북을 켠다.
붉은 달을 선명하게 닮고 싶기도 하고, 천왕성의 모습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었다.
노트북 화면으로 가족들과 함께 보는 월식,
시시각각 움직이는 별들과 옥색으로 보이는 천왕성이 붉은 달에 닿았다가 쏘옥 뒤로 숨는 장면이 하일라이트
이번 생에 볼 수 없다고 하니 더 신기하다.
몇년 전 개기일식을 함께 본 이가 말한다.
개기일식 때 본 다이아몬드링처럼 보인다고.
개기일식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이번 개기월식은 시간이 길다.
붉으스름한 달 기운에서 하얗게 빛이 새어나오는 장면
마치 그때 본 다이아몬드링 같다고 생각할 때
사람 생각은 비슷한가 보다.
일식이나 월식 전 과정을 관측하다 보면 길 것 같은 4시간 금방 지나간다.
시간이 남긴 건 어마어마한 데이터들,
찍는 시간은 즐겁지만 처리하는 시간은 왜 이리 하기 싫은 건지...
또 어찌어찌하다 보니 정리가 되어 기록을 남긴다.
2022년 11월 8일 천왕성과 함께한 개기월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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