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과학 시간에 태양계 단원이 있나 보다. 개교한 지 얼마 안 된 중학교라 학교에 망원경도 없고 열정적인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이론 수업이 아닌 실제 관측도 해주고 싶어하는 눈치 처음엔 고민만 하다가 오랜만에 착한 일 해보자, 나름 재능 기부 한번 해볼까로 생각이 바뀌어 회사에 반차를 내고 어슬렁거리다가 간단한 요깃거리 사들고 찾아간다.
학교에 도착해 보니 신생 학교라 운동장은 좁고 시야도 좁아 옆 공원에 망원경을 펼치기로 하고 대강의 일정과 계획을 협의하여 진행하기로 한다. 도심 외곽의 화려한 조명과 가로등이 훼방꾼이지만 달과 행성과 밝은 별들 위주로 볼 예정이니 문제 없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추적이 되는 가대에 굴절 망원경을 올리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 돕을 설치한다. 하나는 사진 찍고 싶은 이들을 위한 망원경이고 또 하나는 직접 보여 주기 위한 망원경인데 망원경스럽지 않은 돕은 돕대로 신기해 하고 지잉~ 소리를 내고 고투하는 가대의 굴절 망원경을 보곤 우아~ 감탄을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 반응이니 흐뭇할 뿐이다.
초승달로 변해 가는 금성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며 토성의 고리가 귀엽고 꼭 그림을 갖다 논 것 같다는 얘기는 늘 나오며 목성의 줄무늬를 보고 몇 개인지 세어 보는 사람들은 신났다. 그런 분위기에 있으니 반차 내고 온 보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럽지만 다소 아쉬운 건, 1분만이라도 진득하게 관측을 하지 않고, 얼마 후 “이거 찍어 봐도 돼요?” “이거 찍을 수 있어요?” 한다는 것. 자주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 이해가 가면서도 아름다운 순간의 빛, 눈에 조금 더 담아도 좋으련만.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이었던 강화의 저녁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들이 재 냄새로 다가와 코를 자극할 때 오렌지빛 석양에서 나오는 빛이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그러데이션이 두 눈에 들어온다. 멀리 올라가지 못하고 고여 있는 듯한 연기만 빼면 새로 들어온 식구를 맞이하기에 좋은 하늘이다.
오늘 찍을 대상은 삼각형자리은하, M33 강화에서 수없이 본 은하, 시상이 좋은 날은 나선팔이 선명하게 보였고 파인더에서 보이는지 여부에 따라 그날 시상을 가늠했던 기준 은하 처음으로 5분 노출로 2시간 이상 찍었지만 처리하기 난해했던 은하 다시 한번 촬영하고 싶던 은하, 새 식구맞이 테스트로 낙점.
폴마스터를 꺼내 극축을 맞추는데 고도 조절과 방위각 조절이 이처럼 부드러울 수 있을까. EQ6 시절 낑낑 대면서 조절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초점을 맞추고 Air에서 goto 하니 플레이트 솔빙 후 정확하게 중앙에 도입되니 본격적인 촬영 시작, 가이드는 0.4~0.9 사이를 왔다 갔다 무난하게 보여줘 첫 개시는 성공적이다.
M33이 자오선을 넘어 다시 초점을 확인하는데 틀어지지 않았다. 영하 2도로 떨어졌는데...
은하는 색깔 나오게 하는 게 힘들다. 포토샵에서 반복해서 이거 하고 저거 하고 수많이 하고 나니 두 시간 정도 다시 하라면 절대 똑같이 나오지 않을 색에 좌절하돈 했는데 느워어어님이 소개해준 Siril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니, 완전 신세계다. 스택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스택 이후에 몇 번의 명령만으로 웬만한 이미지를 빠르게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DSS로 스택하고 포토샵으로 여러 번 반복 보정하는 게 2시간 정도 걸렸다면 SiriL로 스택하고 기본 보정하고 포토샵으로 마무리하는 작업은 30분 내외이고 다시 스택하고 보정하더라도 색감이 균일하게 나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처음 볼 땐 인터페이스가 낯설었는데 SiriL 익히면 시간 절약은 물론, 더 좋은 이미지 얻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