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의 위성들 간의 만남이라니… 이런 이벤트도 있구나.
전부터 날씨만 좋으면 나가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일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아 오후까지 몸은 축 늘어져 있다. 짝꿍은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 어쩌겠는가 나가야지.
늦은 저녁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하니 거짓말처럼 피로는 사라지고 지난주에 가서 헌혈하던 곳으로 출발하려는 터에 굳이 행성만 볼 건데 거기까지 가지 않고 고인돌 박물관으로 목적지 변경.

강화역사박물관,
강서중에 갈 때마다 화장실 가기 위해 들렀던 곳. 언젠가 페르세우스유성우를 보러 온 많은 사람들이 주차장에 누워 별똥별이 보일 때마다 외치던 함성소리가 가득했던 곳, 올해도 극대기는 지났지만 자정 무렵까지 사람들로 제법 북적인다.

적도의를 설치하고 경통을 올린 후 극축을 대충 맞추려고 극망으로 초록색 레이저 포인트를 쏘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함성소리가 이어지며 별똥별 아니냐는 오해의 소리도 들리는 해프닝,
보이지 않는 얼굴들이 이리 부담스러울 줄이야.

드디어 설치를 하고 333배로 보는 토성,
이제 막 설치했는데도 제법 선명한 상에 감탄하고 있는데
동년배로 보이는 귀가하려는 옆 차 주인이 오더니 보여줄 수 있냐는 말을 건네니
코로나 상황이지만 어찌 안 된다고 할 수 있겠나.
접안렌즈를 본 부부 내외가 감탄하더니 이런 건 애들도 보여 줘야 한다며 차에 있던 학생들을 불러왔으니
그 순간 잠시지만 망원경 근처에서 생기와 즐거움이 피어오른다.
목성도 보여 줄 수 있냐는 말을 안 했어도 오늘 망원경은 목성을 내내 따라갈 것이었기에
“자, 목성으로 갑니다.” 하고 접안렌즈를 보니 대적반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으나
목성의 갈릴레오 위성 4개를 모두 볼 수 있었고, 칼리스토가 목성을 횡단하는 중이다.

고맙단 말을 하며 그 가족이 떠나자 망원경 주면엔 우리만 남은 상황,
천정미러를 빼고 그 자리에 2배짜리 미드 바로우렌즈를 끼우고 178MC를 노트북에 연결하고 목성을 찾는다.
몇 번 해보았다고 금세는 아니지만 제법 능숙하게 목성을 화면 중앙에 도입하고
FireCapture를 처음엔 어색했는데 지인이 사용하는 것을 복기하여 만지작거리니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초점을 맞추고 모니터로 보는 목성 이미지. 7월 시상 좋은 날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와 희망으로 기다린다.

자, 이제 가니메데가 목성으로 들어간다. 점점 더 목성 안으로 들어갈수록 가니메데 그림자만 선명해진다. 뒤이어 유로파 그림자가 뒤따른다.
그런데 구름의 훼방이 시작이다. 옅은 구름만 있어도 모니터에서 목성이 사라진다. 구름이 사라지고 난 후 시상이 더 나빠진 듯하다. 그래도 행운이랄까. 가니메데와 유로파 그림자가 만나는 0시 35분 즈음, 구름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가니메데와 유로파 그림자가 만나는 부분이 뭔가 겹쳐 있는 듯 희미하게 보인다.
그리고 1시 24분 즈음, 뒤따라 온 유로파가 가니메데에 닿는 순간은 가니메데가 유로파 그림자를 만나는 영상보다 더 희미하다. 원이 아닌 타원형 형체의 이미지가 보였기에 둘이 만났거니 들 정도다.

모니터로 보는 목성과 가니메데와 유로파, 그리고 두 위성의 그림자가 보여 주는 영상을 보고 있자니 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접안렌즈가 아닌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관측, 나름 신선하다. ISS가 월면이나 태양면을 통과할 때만 모니터 관측을 했는데 목성들의 위성들이 보여 주는 이런 이벤트 관측의 방법으로도 괜찮을 듯하다.

아직 목성 안에 있을 유로파와 가니메데를 보기 위해 노트북을 접고 바로우렌즈와 178mc를 제거한 후 그 자리에 다시 천정미러를 연결한다. 먼저 500배로 보는데 상이 잘 서지 않아 333배로 본다.
가니메데 그림자와 유로파 그림자가 눈사람 모양으로 붙어 있는 점과 가니메데로 보이는 점 하나, 점 3개가 보인다.

무심코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용량을 보니 100기가. 이런 저품질의 기록이 100기가나 된다니 이런 비효율이 또 어디 있을까. 이 영상을 처리는커녕 다 보기나 할까. 회의감이 적잖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밤하늘 아래에서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으니 의미 있는 일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도 반들반들한 목성 이미지 하나 갖고 싶은데 왕도가 있겠나.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시에 마라톤  (0) 2022.03.29
별 나눔 재능 기부  (0) 2021.11.30
조경철천문대에서  (0) 2021.04.21
불꽃성운과 말머리성운  (0) 2021.01.17
오리온대성운  (0) 2021.01.11

+ Recent posts